-저자-
정지아
1965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1990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되었다.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의 적』 등이 있다.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한무숙문학상, 올해의 소설상, 노근리 평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처- 교보문고 작가소개
-줄거리-
빨치산 이였던 아버지의 부고로 고향으로 돌아와 장례식을 치루며 아버지의 친구, 빨치산 동지, 형, 아버지, 남편으로 얽힌 사람들과 아버지의 얽힘에 대한 이야기
-느낀점-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라는 책의 내용처럼 주인공이 바라본 아버지의 모습은 그저 하나의 얼굴일 뿐 아버지와 마주한 사람마다 본 얼굴이 달랐고 그로 인해 얽힌 사람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전해 들으며 아버지라는 사람에 대해 조금 알게 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집, 조직, 회사, 사회 내에서 내 모습 중 어떠한 모습이 진정한 내 모습일 까라는 고민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어느 곳, 어느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 모두가 나라는 걸
-마음에든 글귀-
아버지는 정면을 바라보는 것인지 45도 오른쪽을 바라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답했다. 그럴 때의 아버지는 평소처럼 무표정하기는 했지만 어쩐지 약간 신이난 듯도 보였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신이 나서 말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마흔 넘어서야 이해했다. 고통도 슬픔도 지나간 것, 다시 올 수 없는 것, 전기고문의 고통을 견딘 그 날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찬란한 젊음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p - 27
금테두리를 둘렀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위스키가 좋았다. 서른 넘도록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소주는 크, 소리가 나도록 썼고, 막걸리는 신입생 때 두잔인가 마시고 기억을 잃은 뒤로 다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고량주는 향이 역했고, 맥주는 너무 차가워 한잔만 마셔도 설사를 했다. 서른 넘어 친구 집들이에서 처음 위스키를 마셨다. 오크향은 달콤했고 목 넘김은 황홀했다. 마셔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영원히 술과 맞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한계란 그런 것이다. 아버지는 해방 전후의 한계와 여전히 맞서 싸우는 중이었고, 그사이 세상은 훌쩍 그 한계를 뛰어넘었다.
p - 70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을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영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p - 102
아버지는 알았을까? 자기보다 한참 어린 막내가 면당 위원장인 당신을 그렇게나 자랑스러워했다는 걸, 그 자랑이 당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걸, 그게 평생의 한이 되어 자랑이었던 형을 원수로 삼았다는 걸. 어쩐지 아버지는 알고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 아버지는 수시로 작은아버지의 악다구니를 들으면서도 돌부처처럼 묵묵히 우리 집이나 작은집 마루에 걸터앉아 담배만 뻐끔 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는 몰랐을 수도 있다. 아무도 보지 않은 그날의 진실을, 그날 작은아버지 홀로 견뎠어야 할 공포와 죄책감을, 보지 않은 누군들 안다고 할 수 있으랴. 역시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만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독한 소주에 취하지 않고는 한시도 견딜수 없었던 그러한 사정이.
p - 131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렂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p - 231
오십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따.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p - 249
-출처- 창비 [아버지의 해방일지]
'안녕 - BOOK >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 윌리엄 포크너 / 민음사 (0) | 2022.12.13 |
---|---|
우리가 고아였을 때 / 가즈오 이시구로 / 민음사 (1) | 2022.12.13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민음사 (0) | 2022.03.16 |
내일 / 기욤 뮈소 / 밝은세상 (0) | 2022.03.16 |
키친 / 요시모토 바나나 / 민음사 (0) | 2021.08.29 |